K-조선, 호황 속 그림자 인력난 해법 모색
"사람이 없다" K-조선, 호황 속 그림자 인력난 해법 모색
서론: 호황 속 K-조선의 역설
최근 글로벌 조선업계는 친환경 선박 및 고부가가치 선박 수요 증가에 힘입어 '슈퍼사이클'이라 불리는 호황기를 맞고 있습니다. 한국 조선소들은 LNG선, 초대형 컨테이너선 등 기술 집약적인 선박 수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보여주며 많은 일감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조선 수주잔량은 팬데믹 이전 수준을 넘어섰고, 올해 2025년 상반기에는 세계 1, 2위를 다투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겉보기 좋은 성과 이면에는 심각한 인력난이라는 고질적인 문제가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습니다. 일감은 넘쳐나는데, 정작 배를 만들 숙련된 현장 인력이 부족하여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는 '호황의 역설'이라고도 불리며, 한국 조선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핵심 과제로 떠올랐습니다.
현재 K-조선 인력난의 심각성
조선업 현장의 인력 부족은 단순한 구인난을 넘어 산업 생태계 전반에 걸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특히 용접, 도장, 배관 등 고도의 숙련 기술이 필요한 직종에서 인력 이탈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난 2024년 조선·해양 산업의 미충원율은 14.7%로, 전체 산업 평균(8.3%)의 두 배에 가까운 수치를 기록했습니다. 이는 필요한 인력의 상당 부분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이며, 현장의 업무 강도와 부담이 가중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국내 조선업계는 연평균 1만 2천 명의 인력이 부족하며, 2027년에는 약 13만 명의 인력이 더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합니다.
인력 부족은 생산 일정 지연뿐만 아니라 품질 저하 문제로도 이어질 수 있습니다. 숙련된 인력이 부족하면 작업 속도가 느려지고, 경험이 부족한 인력이 투입될 경우 오류 발생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이는 '품질'을 강점으로 내세우는 K-조선의 경쟁력 약화로 직결될 수 있습니다.
인력난의 복합적인 원인 분석
K-조선 인력난은 단순히 임금 문제만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여러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 결과입니다.
-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 및 열악한 처우: 조선소의 평균 임금은 반도체나 화학 플랜트 등 다른 제조업 분야에 비해 낮은 편입니다. 반도체 공장이 월 600만 원대에 달하는 반면, 조선소는 월 400만 원대 수준이라고 합니다.
이는 숙련된 인력이 더 나은 조건을 찾아 다른 산업으로 이직하는 주요 원인이 됩니다. - 위험하고 힘든 작업 환경: 조선소 작업은 고소 작업, 밀폐 공간 작업, 화기 작업 등 복합적인 고위험 작업이 많습니다. 2023년 조선업 재해율은 2.63%로, 제조업 평균(0.8%)의 세 배를 넘는다고 합니다.
"질식 사고 우려에, 한여름 선박 내부는 찜통 수준"이라는 현장 작업자들의 증언처럼, 안전 및 작업 환경에 대한 불안감이 인력 이탈을 부추깁니다. - 불안정한 고용 구조 (하청 문제): 고착화된 다단계 하청 구조는 현장 노동자들에게 불안정한 고용과 열악한 대우를 야기합니다.
불황기에는 하청 업체가 먼저 타격을 입고 고용 불안이 심화되는 경험을 반복하면서, 숙련공들은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아 조선소를 떠나게 됩니다. 이는 과거 불황기의 고용 불안 트라우마와도 연결됩니다. - 중간 인력층 붕괴 및 기술 계승 단절: 젊은 인력의 신규 유입이 적고 기존 숙련공들이 이탈하면서, 현장의 허리 역할을 하는 '중간 인력층'이 얇아지고 있습니다. 이는 기술과 노하우의 원활한 계승을 어렵게 만들어 장기적으로 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집니다.
- 타 산업의 상대적 매력 증가: 반도체, 화학 플랜트 등 다른 산업은 임금 수준이 높고, 전국 주요 도시권에 분포하여 근무 환경이 상대적으로 좋으며, 고용 안정성도 높아 숙련공들에게 더 매력적인 선택지가 되고 있습니다.
인력난 해결을 위한 노력과 과제
K-조선 인력난 해결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이며, 단순한 채용 확대 이상의 구조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정부와 업계는 인력난 해소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 외국인력 활용 확대: 단기적인 인력 부족 해소를 위해 외국인 근로자 도입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특정 비자 발급 요건 완화 등을 통해 숙련된 외국인 기능 인력을 유치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임시방편일 뿐, 장기적인 해결책이 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 국내 인력 양성 및 재교육: 조선업 특화 기술 교육 및 훈련 프로그램을 강화하여 신규 인력을 양성하고, 기존 인력의 직무 전환 교육 등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내국인 중심의 기술 훈련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근로 조건 개선: 임금 수준을 현실화하고, 하청 구조 개선을 통해 고용 안정을 도모하며, 복지 혜택을 강화하여 조선소를 매력적인 일터로 만드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정규직 확대를 통해 고용 불안감을 해소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입니다.
- 안전한 작업 환경 구축: 고위험 작업 환경에 대한 안전 투자를 확대하고, 스마트 팩토리 기술 도입 등을 통해 위험 요소를 줄여야 합니다. 작업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은 숙련공들이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 은퇴 인력 활용 및 기술 전수: 숙련된 경험과 노하우를 가진 은퇴 인력을 재고용하거나 멘토링 프로그램 등을 통해 활용하는 방안도 모색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기술 계승의 단절을 막고 현장 경험을 젊은 세대에 전달할 수 있습니다. - 자동화 및 스마트 기술 도입: 용접 로봇, 자동화 설비 등 스마트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생산성을 높이고, 사람이 수행하기 어려운 위험하거나 반복적인 작업을 대체하는 것도 인력난 완화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결론: 지속 가능한 K-조선을 위한 구조 개혁
K-조선이 현재의 호황을 발판 삼아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인력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이는 단순히 사람을 더 많이 채용하는 문제가 아니라, 산업 구조 전반을 개혁하는 대수술이 필요함을 의미합니다.
임금 및 처우 개선, 안전한 작업 환경 구축, 하청 구조 개선을 통한 고용 안정 확보, 그리고 내국인 중심의 체계적인 기술 훈련 시스템 구축 등 다각적인 노력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숙련된 인력이 조선소를 떠나지 않고, 오히려 다시 돌아오고 싶게 만드는 환경을 조성해야 합니다.
'중국은 가격, 한국은 품질'이라는 K-조선의 경쟁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고품질 선박 건조의 핵심인 숙련 인력 확보가 필수적입니다. 지금이야말로 단기적인 처방이 아닌, 산업의 미래를 좌우할 구조적인 '리셋'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정부와 업계, 그리고 노동계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실질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