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조선업 50년: 생산성 혁신을 이끈 소프트 파워와 미래 경쟁력
조선업에 대한 인터뷰 입니다. 권ㅇㅇ라는 분인데 20년 전에 조선소에서 일했다고 합니다. 유럽에서나 중국에서 경험이 있다는데, 이전 대우조선이 루마니아에서 조선소를 경영했고, 중국 연태에서 공장을 운영했습니다. 루마니아 조선소는 대단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루마니아가 EU에 가입하고 사람들이 대거 빠져나가 사람을 못구해서 공정이 한없이 늦어진다는 말이있었습니다.
그는 우리나라 조선업이 강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는데 요지는,
-생산설계
-블록공법,선행의장
-대형설비
-인프라
-숙련공
-can do정신을 듭니다.
공부삼아 하나하나 살펴보겠습니다.
생산설계. 이 개념이 나온 건 일본의 IHI 구레 조선소입니다. 이 회사를 미국 NBC라는 상선회사가 임대하여 자사 소요 선박을 주로 건조했습니다. 신토 히사시라는 사람이 책임자였는데 그는 나중에 일본전신전화회사(덴덴 電電)의 회장을 역임합니다.
구조설계 도면을 보고, 생산의 전문가들이 부재를 따내는 것이 아니라, 설계에서 부재를 그린 도면을 만들고 그 도면대로 작업하면 되도록 했습니다. 전문가의 기능을 도면화 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현장맞춤을 안해도 되게 되었습니다. 생산설계란 부재를 하나하나 도면화하는 것을 말합니다.
블록공법, 선행의장 공법. 부재가 잘려나오면 그걸 붙여서 하나의 단위(블록)로 만들고, 그 블록에 파이프 등 의장품을 넣어 도크에서는 연결만 하면 됩니다. 이렇게 해서 블록조립이 도크 주변이 아니라 별도의 장소(공장)에서 하게되어, 내업과 외업으로 분리되고, 내업은 흐름작업, 외업은 building 작업으로 되고 그 방향으로 공장배치가 됩니다. 그 전에는 모든 게 도크 주위에서 이루어지는 shipbuilding 이었습니다.이 shipbuilding 흔적은 삼성중공업 1,2도크 주변에 남아있습니다. 조립공장의 지붕이 열리고 도크 크레인으로 블록을 들어내게 돼있습니다. 고려원양이란 회사가 원양어선을 짓고자 거제도 죽도에 조선소를 열었고, 이게 삼성중공업의 전신입니다. 아마도 일본의 어느 중소형 조선소의 기술 지도를 받아 레이아웃을 정했는가 싶습니다.
대형설비. 블록을 도크에 쌓아 올리게 되면서 도크 크레인 capacity가 커지게 됩니다. 골리아스 크레인입니다. 울산조선소는 450톤으로 정했는데, 이게 적당하지 싶습니다. 블록을 3개 이상 연결하면 폭이 늘어나 크레인이 취급하게 어렵게 됩니다. 크레인 용량이 커지면 주행속도도 느리게 됩니다. 비유를 하자면 이삿짐 센터에 20톤 덤프 트럭보다 4톤 짜리가 더 편리할 거라는 의미입니다.
도크폭은 대개 VLCC한 척 지을 생각이면 70m전후입니다. VLCC에 panamax bulker를 병열건조하자면 95m정도 될 것입니다. 100만톤 VLCC건조 도크도 있긴한데 실용성이 떨어진다. 수심이 깊은 터미널이 필요하고, 그런 용량을 한번에 나를 필요도 없을 것 같습니다. 70년대 이후 건설된 야드는 대략 이런 정도이고 우리나라의 현상만도 아닙니다.
1000톤 이상의 골리아스 크레인도 가능은 하지만 지금이야 육상건조공법도 개발되어 있으니 굳이 그런 크레인이 필요할까 싶습니다.
인프라. 조선소에 부품을 공급하는 지원 체제를 말하는데 우리 같으면 울산, 부산, 거제 인근에 cluster가 형성되어 있고, 일본도 마찬가지고 중국도 차이없을 것 같습니다. 미국은 이게 상당히 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 전에는 있었겠지만 지금에야 거의 없어졌다고 합니다.
필리 조선소가 인수후 첫 진수를 연말에 예정하던 걸 7월에 했다하는데, 다른 건 그렇다치고 자재조달을 어떻게 했는지 대단히 궁금합니다. 연말에 납품할 엔진을 반년 댕겨 납품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뭔가 인센티브를 약속한 것이 아닌가 싶긴한데.
숙련공. 대한조선공사 영도공장이나 영도에 있는 대선조선 등 중소형을 제외하면 울산조선소가 1973년에 대형조선소로서 조업을 시작했는데 초기에 엄청 헤맸습니다. 제대로 배를 짓기 시작한 건 90년대 들어와서입니다. 근 20년 걸린 셈입니다.
중국도 그럴 것입니다. 1995년에 중국조선소를 돌아볼 기회가 있었는데 영도에 있는 중소형조선소 비슷했습니다. 바닥에 철판 늘어놓고 절단하고, 족장은 대나무를 쓰고 있었습니다. 2000년대 들어 본격적 현대식 조선소를 짓기 시작했는데 이제 20년이 지났습니다. 시행착오를 거쳐 충분히 숙련되었을 것입니다. 우리 90년대는 되리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90년대 LNG선, 컨테이너선, 케미컬선, 자동차운반선, 페리 등을 건조했습니다. 중국도 이제는 손대지 못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90년대 일본배가 우리보다 5-10%비쌌습니다. 유지보수가 용이해 선사의 운항팀이 선호하고, 또 중고 가격이 더 나가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아마 지금 중국배와 우리배도 그런 차이가 있을 것이나 그 차이가 없어지는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우리가 그랬으니까.
생산성이라는 측면에서 말씀드리자면, 저희는 1970년대에 도면을 도입하였고, 1980년대에 들어서 자체 설계를 시작하였습니다. 초기에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으며, 도면 출도 시점까지 결정되지 않은 보류(Pending) 표시가 곳곳에 있었습니다. 보류된 부분은 후공정 작업으로 이어지는데, 이 경우 작업 조건이 매우 불리합니다. 일반적으로 '1, 3, 6, 9'로 표현되곤 하는데, 이는 절단 공정에서 1시간이 소요될 작업이 도크에서는 9시간이 걸린다는 의미입니다.
설계에 익숙해지고 도면에서 보류된 부분이 사라지면서 생산성은 크게 향상되었습니다. 1990년대에는 생산 계획에 전산 시스템이 도입되었습니다. 스케줄과 자재 조달이 연동됨으로써 선행 작업률이 크게 증가하였고, 그 결과 생산성 또한 크게 개선되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생산성이 크게 도약하는 사례는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2000년대에는 생산성보다는 생산량이 우선시되었고, 2010년대에는 구조조정을 거쳤습니다. 앞으로는 인공지능(AI)이 본격적으로 도입된다면 또 다른 도약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동화나 기계화는 게을리하지 않았지만, 그러한 것들보다는 선행화의 효과가 더 컸다고 판단됩니다. 자동화 설비는 비용을 지불하면 어느 기업이나 도입할 수 있는 것이지만, 선행화와 같은 부분은 설비 자체보다 그 기업의 문화나 시스템이 더욱 큰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즉, 눈에 보이지 않는 소프트 파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유를 들자면, 1시간 걸려 김해공항에 가서 비행기 타고 1시간 만에 김포에 도착하고, 다시 1시간 걸려 집으로 가는 경우에서, 비행시간을 10분 줄이는 것보다 공항 가는 시간을 줄이는 방법을 찾는 것이 훨씬 더 큰 영향을 미 미칩니다. 결국 비행시간이 아니라 전체 3시간의 시간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를 고민해야 하는 것입니다.
저희의 이러한 경험은 중국도 거의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미국 또한 이러한 과정을 거치는지 알 수 없으나, 숙련에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재의 담대한 계획들이 그대로 실현되기는 어려울 가능성이 있습니다.
'Can-do' 정신에 대한 권ㅇㅇ 님의 경험도 인상 깊습니다. 엔진 베드에 문제가 생겨 휴가 중에 불려와 일했던 경험인데, 그 시절에는 통용되던 방식이었지만 지금은 기대하기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중국에서는 아직 그러한 방식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현대적인 조선업에서 중국보다 대략 30년 정도 일찍 출발하였고(1970년대), 숙련되는 데 20년이 걸렸습니다. 중국은 30년 늦게 출발하였으며(2000년대), 이제 20년이 지났습니다. 저희가 특별히 뛰어나거나 중국이 부족하다기보다는, 이제는 거의 비슷한 수준에 도달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