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업계 탈탄소화의 핵심: EEXI와 CII 규제 심층 분석

 해운업계 탈탄소화의 핵심: EEXI와 CII 규제 심층 분석

전 세계적으로 기후 변화 대응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국제 해상 운송 분야에서도 온실가스 배출 감축을 위한 강력한 규제가 도입되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 국제해사기구(IMO)가 주도하는 EEXI(현존선에너지효율지수)와 CII(탄소집약도) 규제가 있습니다. 이 두 가지 규제는 이미 운항 중인 선박과 앞으로 건조될 선박 모두에게 적용되어 해운업계 전반에 걸쳐 기술적, 운영적 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1. 규제 도입의 배경: 왜 EEXI와 CII인가?

해상 운송은 전 세계 무역량의 약 80%를 담당하는 필수적인 수단이지만, 동시에 상당량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원인이기도 합니다. IMO는 2018년 초기 온실가스 감축 전략을 채택하고, 2050년까지 국제 해운의 온실가스 총 배출량을 2008년 대비 최소 50%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했습니다. 이후 2023년 7월에는 목표를 더욱 강화하여 2050년경 순배출량 '제로(Net-Zero)' 달성을 위한 수정 전략을 채택했습니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단기 조치로 EEXI와 CII 규제가 도입되었습니다. 기존에도 신조선에 대해 에너지 효율을 규제하는 EEDI(에너지효율설계지수)가 있었지만, 이는 2013년 이후 건조 계약된 선박에만 적용되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전 세계 선대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현존선에 대한 규제가 필요해짐에 따라, 모든 선박의 에너지 효율을 평가하고 관리하기 위한 새로운 제도가 마련된 것입니다. EEXI는 선박의 설계 효율성을, CII는 실제 운항 효율성을 평가함으로써 해운산업의 탈탄소화를 다각적으로 추진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2. EEXI (Energy Efficiency Existing Ship Index): 현존선의 기술적 효율성 평가

EEXI는 '현존선에너지효율지수'의 약자로, 이미 운항 중인 선박의 에너지 효율을 평가하는 기술적 지표입니다. EEDI가 신조선의 설계 단계에서 효율성을 평가하는 것과 유사하지만, EEXI는 EEDI 적용 대상이 아닌 현존선 전체로 대상을 확대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2.1. EEXI의 계산 및 기준

EEXI 값은 선박의 종류, 크기, 엔진 출력, 연료 소모율 등 선박의 기술적 사양을 기반으로 계산됩니다. 복잡한 계산식을 통해 산출되지만, 기본적으로는 단위 운송량(톤-마일)당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나타냅니다. 계산된 EEXI 값은 IMO가 정한 기준치(Required EEXI)와 비교됩니다. 이 기준치는 선종 및 선박 크기별로 다르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진적으로 강화됩니다.

2.2. EEXI 규제 이행

EEXI 규제는 2023년 1월 1일부터 시행되었습니다. 모든 국제 항해에 종사하는 총톤수 400톤 이상의 선박은 EEXI 값을 계산하고, 이 값이 IMO 기준치를 만족하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기준치를 만족하는 선박은 국제에너지효율증서(IEEC)를 발급받아야 운항을 계속할 수 있습니다.

2.3. EEXI 기준 미달 시 대응 방안

만약 선박의 EEXI 값이 IMO 기준치를 초과하는 경우, 선주는 기준을 만족시키기 위한 기술적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대표적인 대응 방안은 다음과 같습니다.

  • 엔진 출력 제한 (Engine Power Limitation, EPL): 선박의 주기관 최대 출력을 물리적 또는 소프트웨어적으로 제한하여 연료 소모량을 줄이는 방법입니다. 가장 일반적이고 비용 효율적인 방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에너지 절감 장치 설치 (Energy Saving Devices, ESDs): 프로펠러 효율 개선 장치(Pre-Swirl Stator, Propeller Boss Cap Fins 등), 덕트(Duct) 설치, 선체 공기 윤활 시스템(Air Lubrication System) 등 다양한 에너지 절감 장치를 설치하여 선박의 효율을 높이는 방법입니다.

  • 선체 개조 또는 교체: 선체 형상 변경이나 엔진 교체 등 대규모 개조를 통해 효율을 개선할 수 있으나, 이는 비용과 시간이 많이 소요됩니다. 노후 선박의 경우 폐선 후 신조선으로 대체하는 방안도 고려될 수 있습니다.

EEXI는 선박의 기술적 효율성을 한 번 평가하여 기준 충족 여부를 판단하는 일회성 규제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일단 기준을 만족하면 추가적인 기술적 변경이 없는 한 EEXI 값은 고정됩니다.

3. CII (Carbon Intensity Indicator): 선박 운항의 실제 효율성 평가

CII는 '탄소집약도'를 의미하며, 선박의 실제 운항 효율성을 평가하는 지표입니다. EEXI가 선박 자체의 잠재적 효율성을 본다면, CII는 선박이 실제로 얼마나 효율적으로 운항했는지를 연간 단위로 평가합니다.

3.1. CII의 계산 및 등급 부여

CII는 선박이 1년 동안 운항하면서 배출한 이산화탄소 총량을 해당 기간 동안의 운송량(화물량 또는 총톤수)과 운항 거리(항해 거리)를 곱한 값으로 나누어 계산합니다. 즉, 단위 운송량-거리 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나타냅니다.

계산된 CII 값은 IMO가 정한 기준치와 비교하여 A부터 E까지 5단계의 등급으로 평가됩니다.

  • A (Major Superior): 기준치보다 훨씬 우수

  • B (Superior): 기준치보다 우수

  • C (Moderate): 기준치 만족

  • D (Minor Inferior): 기준치 미달, 개선 필요

  • E (Inferior): 기준치에 크게 미달, 즉각적인 개선 필요

이 등급은 매년 부여되며, 선박은 2024년부터 첫 등급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3.2. CII 규제 이행 및 개선 계획

총톤수 5,000톤 이상의 국제 항해 선박은 매년 연료 소모량 데이터를 수집하여 IMO에 보고해야 합니다(DCS: Data Collection System).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CII 값이 계산되고 등급이 부여됩니다.

C 등급 이상을 받은 선박은 문제가 없지만, 3년 연속 D 등급을 받거나 한 번이라도 E 등급을 받은 선박은 다음 해에 반드시 C 등급 이상을 받기 위한 시정 조치 계획을 포함하는 선박에너지효율관리계획서(SEEMP Part III)를 수립하여 제출하고 이행해야 합니다.

3.3. CII 등급 개선을 위한 운영적 방안

CII는 운항 효율성을 평가하므로, 등급 개선을 위해서는 선박의 운영 방식을 변경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요 방안은 다음과 같습니다.

  • 최적 속도 운항 (Slow Steaming): 선박 속도를 줄이면 연료 소모량이 크게 감소하여 CII 값을 개선할 수 있습니다. 이는 CII 등급 개선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로 꼽힙니다.

  • 최적 항로 선택: 기상 조건, 해류 등을 고려하여 가장 효율적인 항로를 선택함으로써 운항 거리와 시간을 단축하고 연료 소모를 줄일 수 있습니다.

  • 선체 및 프로펠러 관리: 선체에 따개비나 해조류가 부착되면 저항이 증가하여 연료 소모가 늘어납니다. 정기적인 선체 청소 및 프로펠러 연마를 통해 효율을 유지해야 합니다.

  • 기관 최적화: 엔진 및 기타 장비의 정기적인 유지보수 및 최적화를 통해 연료 효율을 높일 수 있습니다.

  • 대체 연료 사용: LNG, 메탄올, 암모니아 등 기존 연료보다 탄소 배출량이 적거나 없는 대체 연료를 사용하면 CII 값을 크게 개선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는 선박 개조 또는 신조가 필요하며 관련 인프라 구축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 육상 전원 사용 (Cold Ironing): 항만 정박 중에는 선박 자체 발전기 대신 육상 전원을 사용하여 대기 오염 물질 및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수 있습니다.

CII는 매년 평가되므로, 선주는 지속적으로 선박의 운항 데이터를 모니터링하고 효율 개선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낮은 등급을 받는 선박은 용선 시장에서 불이익을 받거나 운항에 제약을 받을 수 있어 선박의 자산 가치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4. EEXI와 CII의 관계 및 해운업계에 미치는 영향

EEXI와 CII는 모두 선박의 에너지 효율 및 탄소 배출량 감축을 목표로 하지만, 평가 방식과 초점이 다릅니다. EEXI는 선박의 '설계 잠재력'을, CII는 '실제 운항 성과'를 평가합니다. 이 두 규제는 상호 보완적으로 작용하여 해운업계의 탈탄소화를 이끌고 있습니다.

  • 기술적 개선과 운영 효율화 병행: EEXI는 선박 자체의 기술적 개선(EPL, ESDs 등)을 유도하고, CII는 선박 운영 방식의 효율화(최적 속도, 항로, 관리 등)를 촉진합니다. 두 가지 노력이 병행되어야 실질적인 온실가스 감축이 가능합니다.

  • 선대 관리 전략 변화: 선주들은 EEXI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노후 선박에 대해 개조 또는 폐선 여부를 결정해야 하며, CII 등급 관리를 위해 선박의 운항 계획 및 연료 사용 전략을 재검토해야 합니다. 이는 선대 구성 및 투자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 용선 시장 변화: 용선주들은 CII 등급이 높은(A, B 등) 선박을 선호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낮은 등급의 선박은 용선료가 하락하거나 용선 기회를 얻기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 조선 산업 영향: EEXI 및 CII 규제 강화는 고효율, 친환경 신조선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킬 것으로 예상됩니다. 또한, 기존 선박의 EEXI/CII 기준 충족을 위한 개조(Retrofitting) 시장도 성장할 것입니다. 한국 조선소들은 이러한 변화에 맞춰 LNG, 메탄올, 암모니아 추진선 등 친환경 선박 건조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 운영 비용 증가: 규제 준수를 위한 기술적 개조, 에너지 절감 장치 설치, 대체 연료 사용 등은 선박 운영 비용 증가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특히 저속 운항은 운송 시간이 길어져 추가적인 선박 투입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5. 규제 이행의 도전 과제 및 향후 전망

EEXI와 CII 규제는 해운업계의 탈탄소화를 위한 중요한 발판이지만,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습니다.

  • 비용 부담: 특히 중소형 선사들에게는 선박 개조 및 운영 효율화에 필요한 투자 비용이 큰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 데이터의 정확성 및 투명성: CII 계산의 기반이 되는 연료 소모량 데이터의 정확성과 보고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집행 및 규제 일관성: 전 세계적으로 통일된 규제 집행과 항만국의 일관된 대응이 필요합니다.

  • 대체 연료 및 인프라 부족: 저탄소/무탄소 연료의 생산, 공급 및 벙커링 인프라 구축이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어 광범위한 적용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 용선 계약 문제: CII 등급 관리에 대한 책임이 선주와 용선주 중 누구에게 있는지 명확히 하는 계약 조항 마련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도전 과제에도 불구하고, EEXI와 CII는 해운업계가 피할 수 없는 변화의 흐름을 만들고 있습니다. IMO는 2050년 넷제로 목표 달성을 위해 중장기적으로 더욱 강력한 규제(예: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 저탄소 연료 사용 의무화 등) 도입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한국 해운 및 조선 산업은 이러한 국제 규제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한국선급(KR)과 같은 기관들은 EEXI/CII 계산 프로그램 및 기술 가이드를 제공하며 선사들의 규제 대응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또한, 국내 조선소들은 친환경 선박 기술 개발 및 수주에 박차를 가하며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고 있습니다.

6. 요약

EEXI와 CII는 IMO가 해운 분야의 온실가스 배출을 감축하기 위해 도입한 핵심 규제입니다. EEXI는 현존 선박의 기술적 에너지 효율을 일회성으로 평가하고, CII는 선박의 실제 운항 효율성을 매년 평가하여 등급을 부여합니다. 이 두 규제는 선박의 기술적 개선과 운영 효율화를 동시에 요구하며, 해운 및 조선 산업 전반에 걸쳐 선대 관리, 운항 전략, 투자 결정 등 광범위한 변화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규제 이행에는 비용 부담, 인프라 부족 등의 도전 과제가 있지만, 해운업계는 탈탄소화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새로운 기술 개발과 운영 혁신을 통해 지속 가능한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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